everythingrecord 2020. 1. 5. 19:05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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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긍정과 대립되는 말.

어떤 일이나 그러한 양태를 성립시키지 않게 하려는 의지, 또 어떤 판단이나 명제를 거짓이라 하는 이성적 행위이다. 이 의지와 이성 양쪽의 부정에는 전면부정과 부분부정이 있다. 결여나 한정이나 모순이나 대립도 광의적으로 부정이다.

논리적으로 부정은 긍정적 조정()에 이르기 위한 단계라고 볼 수 있고 그 자체가 긍정을 포함하고 있다. 즉, ‘S는 P가 아니다’라는 부정판단은 ‘S는 비()P이다’라는 긍정판단과 등가()이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규정은 그것 이외의 규정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과 부정과는 대립할 뿐만 아니라 상관적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체의 판단은 부정을 포함하며 신()을 제외한 일체의 존재자는 부정을 안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정 [negation, 否定] (두산백과)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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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인정하는 긍정에 대하여, 그것을 거부하여 인정하지 않는 것. 논리학에서는 처음에 세워진 명제에 대하여 이와는 반대의 명제를 끌어내는 논리적 조작을 말한다. 이 경우에, 처음에 세워진 명제가 참이라면, 반대의 명제는 거짓이고, 또 이 역도 성립한다. 부정의 조작에는 보통 '~가 아니다'라는 말이 붙거나 또 '~가 거짓이다'라는 식으로 진술된다. 논리학의 기호로서는 'ā 또는 ~A' 등으로 표시된다.

변증법에서 부정은 발전의 빼놓을 수 없는 계기이고 사물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부정의 이러한 의미는 헤겔에게서 명확하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스피노자가 '모든 규정은 부정이다'라고 서술한 바 있었다. 거기에서도 부정의 적극적 의의가 보여진다.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이러한 부정의 의의를 더욱 명확히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정 [Negation, 否定] (철학사전, 2009., 임석진, 윤용택, 황태연, 이성백, 이정우, 양운덕, 강영계, 우기동, 임재진, 김용정, 박철주, 김호균, 김영태, 강대석, 장병길, 김택현, 최동희, 김승균, 이을호, 김종규, 조일민, 윤두병)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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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또는 부정성(Negativität)에 관한 독특한 해석을 빼놓고서 헤겔 철학 특히 논리학의 특징과 방법을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있어 부정은 언명형식에서 긍정(Affirmation)과 대립하고 있는 형식논리적인 부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경험적 인식의 조건으로서 실재성(Realität)에 대립된 초월론적인 부정도 아니다. 그는 부정 개념에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의 중요성을 부여하며, 거기서 시대의 분열과 추상적 무를 극복하는 길을 찾고 있다.

부정은 "모든 철학이념과 사변적 사유 일반의 추상적 기초"이지만, 근대까지 그 참된 모습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부정이야말로 "참으로 실재하는 것, 즉자존재"이며, 그때까지 확고부동하다고 생각되어 왔던 범주를 대신해 〈존재〉의 원리의 위치를 차지해야만 한다[이상 『논리의 학(초판)』 GW 11. 77]. 헤겔의 부정 개념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대체로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최초의 부정 일반으로서의 부정은 두 번째의 부정의 부정과 구별되어야만 한다. 후자가 구체적이고 절대적인 부정성인 데 반해 전자는 추상적인 부정성이다"[『논리의 학』 5. 124].

Ⅰ. 규정성으로서의 부정. 헤겔 논리학은 우선 〈규정성〉을 문제로 하지만, 스피노자의 "모든 규정성은 부정이다"라는 명제를 끌어들여 규정성 그 자체가 부정이라고 주장한다. 규정성이란 어떤 것의 존재를 의미하기 때문에 부정은 어떤 것을 존재케 하는 원리이며 추상적인 무가 아니다. 또는 부정은 어떤 것의 제한이지만, 제한은 단순한 무가 아니라 어떤 것의 즉자존재와 관련된 결여이기 때문에 부정은 〈즉자존재〉를 지시한다. 나아가 부정은 (전혀 부정을 포함하지 않는) 실재성과 (전혀 실재성을 포함하지 않는) 부정과의 대립 범주에서의 부정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양자는 모두 추상적인 무이며 실제로 부정은 이미 실재성 속에 계기로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Ⅱ. 부정의 부정. 두 번째 부정은 규정성으로서의 부정을 부정하는 것, 〈부정의 부정〉이다. 그것은 어떤 것의 제한의 부정이기 때문에 그 즉자존재가 정립되는 것, 〈당위〉의 활동이다. 헤겔은 부정의 부정을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이라고 생각한다. 헨리히(Dieter Henrich)에 따르면 부정의 부정은 실재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언명에 특유한 이중부정의 형식 ~p로부터 파악되고 있지만, 언명의 부정은 자기관계적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에 그것 자신의 타자라는 타자존재의 사상이 결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 관계하는 부정성은 "모든 활동성, 생명적이고 정신적인 자기운동의 가장 깊은 곳에 놓여 있는 원천", "주관을 인격, 자유로운 것으로 이루는 바의 생명과 정신의 객관적인 계기"[같은 책 6. 563]로 찬양되며, 헤겔의 논리적 방법과 세계관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정 [否定, Negation] (헤겔사전, 2009. 1. 8., 가토 히사다케, 구보 요이치, 고즈 구니오, 다카야마 마모루, 다키구치 기요에이, 야마구치 세이이치, 이신철)

 

부정

【Ⅰ】 모순 · 대립 · 부정

사유 속에서 부정이 수행되는 것은 판단에서이다. 그것은 긍정판단에 대한 부정판단으로서 나타난다. 두 판단을 동일한 것에 대해서 무언가의 규정을 긍정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그것들은 모순의 관계에 놓여 있다. 부정이란 해당 규정이 해당 대상에 결여되어 있다는 것(Mangel, defectus)을 의미한다. 이에 대응하여 '실재성(Realität)'에 대립한 '부정(Negation)'의 범주가 이해된다.

칸트는 이러한 대립을 "논리적 대립(die logische Opposition, Repugnanz)"[『부정량의 개념』 Ⅱ 172]이라고 부른다. 부정은 주어 개념에 미리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부여된 것의 결여를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어 개념과의 비교를 통해서 분석적으로 주어 개념에 대립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논리적 대립'은 "분석적 대립(die analytische Opposition)"[A 504/B 532]이라고 칭해진다. 그것은 모순과 같은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개념을 결여한 공허한 대상", 즉 "부정적 무(nihil negativum)"[A 292/B 348]를 결과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에 대해서 칸트는 근대의 과학적 · 수학적 사유의 발전에 근거하여 박탈(Beraubung, privatio)로서의 부정의 사상을 도입한다. 그것은 수학에서의 '부정량(negative Größe)'이 긍정량에 대립하듯이 일정한 실재성을 지니면서 다른 실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관계를 칸트는 "실재적 대립(die reale Opposition, Realrepugnanz)"[Ⅱ 172]이라고 부르며 논리적 대립과 구별한다. 대립항은 각각 단독으로 고찰될 수 있으며, 그런 한에서 적극적인 내용을 지닌다. 그것들이 관계지어질 때에 부정적인 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0)으로 된다. 이것은 개념의 공허한 대상으로서의 "박탈(결여)적 무(nihil privativum)"[Ⅱ 172; A 292/B 348]라고 칭해진다.

칸트는 이것을 A–A=0 또는 A–B=0이라고 정식화하며[Ⅱ 177], 또한 "A–B=0인 곳에서는 어디서나 실재적 대립이 발견된다"[A 273/B 329]고 주장한다. 그것은 수학에 그치지 않고 현상계 일반으로 확대되어 긍정량과 부정량이라는 개념을 물리학에 도입한 뉴턴과 궤를 같이 함과 동시에, 실재 사이에서 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라이프니츠의 사상에 대한 비판을 이룬다. 무엇보다 대립의 항은 관계지어져서 비로소 서로 부정하기 때문에 긍정과 부정이 미리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과 부정의 규정을 얻는 것은 일정한 관점 하에 놓임으로써 이루어진다.

【Ⅱ】 무한판단

이러한 전비판기로 소급되는 사상에 반해 비판기의 사상으로서 특기할 만한 것은 '긍정판단', '부정판단'과 더불어 질의 판단에 '무한판단(unendliches Urteil)'이 도입된다는 점이며, 그에 대응하여 질의 범주의 실재성, 부정과 더불어 '제한(Limitation)'[A 80/B 106]이 놓인다는 점이다. 부정판단 "영혼은 가사적이지 않다(Die Seele ist nicht sterblich.)"에 대한 "영혼은 비가사적이다(Die Seele ist nichtsterblich.)"는 영혼을 가사적인 것의 영역에서 배제하여 가사적일 수 없는 것의 영역에 귀속시키는 제한의 기능을 지니지만, 긍정, 부정판단에 대한 제3의 판단의 가능성을 보이며, 또한 일정한 영역을 넘어선다는 의미에서 이율배반의 해결에 기여한다.

즉 "세계는 무한하다", "세계는 유한하다"의 대립을 칸트는 세계를 사물 자체로 보는 데서 나오는 가상의 대립이라고 하여 이것을 "변증론적 대립(die dialektische Opposition)"[A 504/B 532]이라고 부르며 '분석적 대립'과 구별한 것이지만, 이러한 대립을 벗어나는 길은 세계를 사물 자체로 간주하는 전제를 폐기하여 현상의 영역에로 옮기는 것이다. 거기서는 세계는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고 양적으로 미규정적이라는 주장이 정당해진다.

【Ⅲ】 초월론적 부정

이러한 해결책은 현상과 사물 자체를 엄격히 구별하는 초월론적 관념론의 주장에 기초하여 가능해진다. 인식의 범위를 현상계로 한정한다고 하는 계율을 깨트리면 다양한 가상이 생겨나며, 그것은 또 하나의 무의 개념, "대상을 결여한 공허한 개념"으로서의 "사념상의 존재(ens rationis)"[A 292/B 348]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경험적 인식을 이끄는 지도적인 규제적 이념으로서 살려내는 것이 칸트의 의도였지만, 그러한 이념의 하나로서의 신을 '실재성의 전체(omnitudo realitatis)'로서 전제하고 그에 기초하여 일체의 사물을 일관적으로 규정하고자 할 때 '제한'으로서의 부정이 수행되게 된다[A 576/B 604].

즉 각각의 사물의 일관적 규정을 얻고자 하면, 사물들이 지니는 일체의 가능적 술어를 그 반대와 비교한 다음 그 하나를 해당 사물로 돌릴 것이 요구되지만(일관적 규정의 원리[A 571/B 599]), 그것은 일체의 가능적 술어 속에서 해당의 것이 주는 몫을 확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 사물에 귀속하는 규정의 존재와 그 이외의 규정의 결여=비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전자가 '초월론적 긍정(die transzendentale Bejahung)', 후자가 '초월론적 부정(die transzendentale Verneinung)'이라고 칭해진다. 그것들이 특별히 내용의 존재여부에 관계하는 긍정, 부정인 데 반해, 단순한 논리적 부정(die logische Verneinung)은 내용에 관계하지 않는 부정에 지나지 않는다[A 574/B 602]. 부정을 규정된 것으로서 사유하기 위해서는 대립하는 긍정을 기초에 놓아야만 한다. 부정의 모든 개념은 도출된 것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이와 같이 긍정이 부정에 선행한다고 하는 사상 역시 칸트에게 특징적이었다고 간주된다.

-야마구치 마사히로()

[네이버 지식백과] 부정 [否定, Negation, Verneinung] (칸트사전, 2009. 10. 1., 사카베 메구미, 아리후쿠 고가쿠, 구로사키 마사오, 나카지마 요시미치, 마키노 애이지, 이신철)

 

부정

[  , Negation음성듣기 ]

정립된 명제의 진리가를 거부하거나 부인하는 행위. 영어로 '부정'을 의미하는 negation은 부인, 거절, 반대를 뜻하는 라틴어 negatio에서 유래하였다. 부정엔 <논리적 부정>과 <실존주의적 부정>, 그리고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변증법적 부정>이 존재한다. 이는 차례로 정반대 의미값으로서의 부정, 저항이나 부인()의 의미에서의 부정, 변증법적 계기로서의 부정 등으로 요약된다.

<논리적 부정>은 논리학에서 A≠-A라는 모순율의 공리()를 통해 제시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우항의 -A를 부정하여 -(-A)로 정식화하는 순간에 좌항의 A값이 도출된다. 예컨대, '깨끗하다'가 '더럽다'의 반대 의미로 정립된 것이라면 '더럽다'를 다시 부정하여 전자의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둘 사이엔 논리적 부정 관계가 성립되며 좌항과 우항은 표리성을 맺는다. 논리적 부정은 인지적() 요소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에 수학적 진리가나 논리성을 따질 때 유효하다.

<실존주의적 부정>은 부조리에 저항함으로써 인간적 자유를 확보하는 의지 행위로서의 부정이다. 문학의 경우 까뮈(A.Camus)의 『이방인(l'étranger)』등에 나타난 부정이라 말해볼 수 있다. 부조리한 실존에 대응하는 이같은 부정엔 반드시 논리적 모순에서와 같은 반대의 진릿값이 결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실존주의적 부정은 정의적() 요소나 의식의 능동성과 관련된 화두와 결합하며 작동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모순된 현실 질서를 부정하는 욕망의 언어라 정의한다면, 이같은 부정의 능력은 세계와 자신의 실존을 새로이 열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일례로, 80년대 한국문학의 한 주류였던 민중문학이나 노동 문학 담론은 현실을 꿈이나 환상의 프리즘으로 이해하려 했던 기존 문학의 욕망들을 전복하는 부정의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역사 발전이나 의식의 발전 단계에서는'부정의 부정'을 통해 전개되는 <변증법적 부정>이 있다. 이 경우의 '부정'은 '변증법'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성을 띤다. 헤겔(Hegel)은 『정신현상학(Phanomenologie des Geistes)』에서 역사의 절대정신이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을 '변증법'의 속성 때문이라 보았다. 모순된 정()과 반()이 상호 부정되면서 동일한 것으로 지양되는 운동의 속성이 그것이다. 지양된 결과물이 다시 정()으로 정립되고 새로이 나타난 반()과 길항하며 목표지향적으로 통합되는 것이 '부정의 부정' 원리 때문이라 본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부정의 경우엔 대립물들이 결과적으로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부정의 부정은 기존의 주어진 대상을 대립물과 마주시킨 후 다시 지양하여 그 요소가 완전히 폐기되지 않는 새로운 합성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모순 구조'의 지양을 강조하는 변증법이 서구 철학에서 반드시 금과옥조로 통용된 것만은 아니었다. 헤겔류의 변증법을 주시한 아도르노(Adorno)는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ktik)』에서 헤겔이 정과 반, 주객의 '모순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후 폭력적으로 종합시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헤겔이 성급하게 종합해 올렸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분류한 후, 변증법이 정()과 반()의 모순 구조보다는 '부정의 행위' 자체에서 성립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모순된 반정립의 대상은 '부정의 부정'이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거나, 이루어진다 해도 '종합'의 작용이 헤겔처럼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인 마르쿠제나 피이테의 변증법에 나타난 부정 문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보여준 예에 해당한다.(최종환)

[네이버 지식백과] 부정 [否定, Negation]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